숏폼 컨텐츠는 우리의 주의력을 초 단위로 끊는다. 생산적인 일은 전부 AI가 맡게 되었고, 과거 그 일을 할 때 필요했던 길고 깊은 사고는 몇 번의 프롬프팅과 약간의 번뜩이는 영감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AI의 강력함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을 활용하여 문제를 푸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어떤 문제든 "해줘"로 풀었고, 어떤 난이도를 요구하든 클로드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그것에 내재된 '나'라는 사람의 인지 과정이 변했다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1분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몇 초 내에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AI가 해결책을 내놓으면 실행과 계획을 맡긴다. 다가오는 과제들은 하나둘 쳐냈지만 나라는 사람이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결과물에는 특색이 없었고, 깊이도 없었고, 그렇다고 최고도 아니었다. 최악을 면할 정도의 수준으로 AI가 만든 결과물을 내가 한 것처럼 내놓으며 (뭐 내가 한거나 다름없지만) 하루하루 살아갔다. 그러다가 나와 달리 무언가 번뜩이는 것을 만든 사람들을 보면 조바심이 났다. 속으로는 대책을 세웠다. "생각해야만 해. 더 깊이 파야만 해. 그럼 글을 적어야 되지 않을까?" 네이버 블로그에서 비공개로 글을 올려봐도 얼마안가 그만두게되고, 무엇보다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중해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적을 만한 주의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여전히 [생각 20초 - AI와 짧은 대화 - "계획 짜와, 대충 만들어봐" - 가짜 성취감]의 루프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난 자연스럽게 내 스스로 가장 뇌가 활성화되어 있었다고 느꼈던 때를 떠올렸다. 대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인의 노트>라는 책을 읽었을 때였다.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해 모든 것을 알고 싶었던 그때는 책을 씹어먹을 기세로 책을 읽었다. 나는 저자의 글을 한 호흡도 빼놓지 않고 소화했고, 그때의 내 삶은 <거인의 노트>와 일체화 되어 있었다.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내용은 '순간의 생각' - '생각의 연결'이다. 무언가를 하다가 혹은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나면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가 글을 정리하려다 보면 어떤 생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을 연결 짓고 내가 해낸 생각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은 하나의 통찰이자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각이 된다. 스스로 텅 비어있다고 생각하던 지금에, 나는 이 과정을 되짚고 싶었지만 그때와 같은 주의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줄 도구인 Forest를 만들었다.
Forest는 다른 블로그 서비스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작성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차이점은 내가 쓴 글과 다른 글을 연결하여 생각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제어할 수 있는 트리 형태 그래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기술이나 학문의 흐름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웹소설이나 문학을 공동 창작하는데도 괜찮은 툴이 될 것이다. 아울러 자신들의 트리를 공유하고, 합치고, 향유하면서 Forest라는 공간이 거대한 통찰 보관소이자 건강한 토론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초 단위의 주의력과 생각 아웃소싱의 시대에서 이곳이 자신을 수련하는 대피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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